한미 FTA 총평으로 본 우리의 과제
한미 FTA의 세계경제사적 의의
18c 자본주의가 발생한 이래 세계경제사는 자유무역에서 보호주의로, 보호주의에서 자유무역으로 번갈아 줄타기를 해 왔다. 역사적으로 자유무역은 전세계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나라가 등장할 때 나타났다. 강력한 군사력과 자금력으로 통화질서를 패권국 중심으로 안정시키고 무역경로를 안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국, 미국이 그러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안정적인 자유무역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과 안정적 헤게모니하에서의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팽창, 그리고 국가 내의 경제불평등, 인간소외로 인한 계급투쟁으로 인해 항상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게 된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보면 자유무역주의가 역사에서 얼마나 어겨져 왔는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오히려 자유무역주의는 후발국들의 경제성장을 따돌리고 자국 패권이 본궤도에 오를 때만 나타났다. 1970년대 장기침체와 80년대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도래 이후에 세계경제는 자본주의적 모순의 발생 주기가 훨씬 빨라졌고 계급투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세계헤게모니가 다극화되는 양상도 나타났다. 그리하여 자유무역주의는 또 다시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FTA가 그러하다.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FTA는 보호무역주의에 가깝다. 자유무역은 하나의 시장이 존재하면 그 곳에 드나드는 어떤 국가의 상품도 같은 조건 하에서 경쟁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재화가 분배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FTA는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타 국가에 대한 역차별에 해당한다. 또한 상호간 시장에 대해 ‘협약’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주의도 아니며 외려 국가의 적극적 경제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빙자한 보호무역을 바탕으로 현재 무너져가고 있는 자신의 헤게모니를 재건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미FTA는 미국경제의 위기를 한국에서 만회하도록 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미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주요 산업은 금융업이다. 한국이 자진해서 자본시장통합법,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 등을 추진하고 금융허브로서의 기능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전세계 금융시장에 한국을 무방비 상태로 내어 놓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시티그룹 등의 ‘굴지의’ 세계적 금융회사들이 한국에도 몰려들 것이다. 이들이 한 번 움직이면 주가는 고공상승과 추락을 반복하게 된다. 한국경제는 나름대로 꽤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주식으로 실현된 차익은 엄청날 것이다. 이미 우리는 IMF때 이러한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자유무역주의와 시장주의, 금융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홀린 경제담당관들이 이런 엄청난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위정자들은 한국경제의 대안이 금융밖에 없다는 잘못된 충정심으로 추진하고 있겠지만.
자유무역과 시장주의란 허상은 이런 식으로 그 시대의 상황에 맞춰 가공, 변형, 도용된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가장 강력한 보호주의국가이며 리스트가 만들었다고 하는 보호주의 이론도 사실은 미국이 만들어 냈다. 사실 미국과 헤게모니 분파들(현대 자본주의의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이득 증진을 위해 여러 형태로 바꿔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헤게모니국들은 자신의 위기를 늘 보호무역주의와 제 3세계국에 ‘강요한’ 자유무역주의로 극복해 왔다. 1차, 2차 대전의 주요 원인인 자본주의국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은 제 3세계 수탈과 초과착취에 근거해 가능했다. 70년대 장기침체 이후 자본주의국들의 위기는 차례로 80년대 중남미, 아프리카, 90년대 동아시아로 옮겨간다. 중남미의 외채 이자를 마구 올려버리고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은 건 1세계국들의 위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역시 ‘발전’을 빌미로 선진자본주의 종속적인 경제체제를 만들어 버린다.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해 왔던 동아시아에도 이 위기는 찾아오게 되는데, 97년 태국,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한미 FTA 추진은 이런 연장선상에 서 있다. 차례로 위기는 이제 2007년 미국으로 넘어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현상하였다. 이제 경제적으로는 대책이 거의 없는 것이다. 헤게모니국들의 대책은 이제 전쟁 외에 남은 것이 거의 없다. 2000년 부시가 클린턴의 평화외교정책을 뒤엎고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의 연장에 서 있다.
한미 FTA의 정치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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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희망하는 20여 개국 중 한국을 파트너로 꼽았다는 건 동북아에서 지주국가(stake)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한 것 같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의 공고화라는 상징적 효과가 크다."(중앙일보, 2월 3일, "경제 외교 안보 아우른 한미 동맹 업그레이드") |
한미 FTA로 인해 자동차업계가 보는 손익계산서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로 따져보았을 때 굉장히 구차한 것에 불과하다. 정치적 의도는 곧바로 자주, 평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맨 위 인용된 기사는 우리나라의 한 외교당직자가 언론사 보도자료에 싣은 것이다. 미국의 의도를 파헤쳐보자. 지주국가로서의 역할, 미국이 한국을 동아시아 전진기지로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경제적으로는 FTA, 군사적으로는 전략적 유연성(현재 평택, 군산, 제주에 지어지고 있거나 존재하는 군사기지)으로 대중, 대러, 대북 대립구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유라시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리는 대결의 장이 된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 땅에 평화는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한국은 동아시에서 미국의 마리오네뜨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국내 계급 역학관계는 외세에 의해 억압되어 발현되지 않다가 폭발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이전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주국가로서의 역할은 또 있다. 한국정부는 금융허브와 FTA허브라는 두 가지 ‘허브론’을 들고 나왔다. 보통 FTA는 국내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기 때문에 한번에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이다. 특히 미국, EU 정도의 경제대국들과 하는 FTA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한국의 노무현 정권은 50개 이상의 동시다발 FTA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EU와 추진하는 FTA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고 있으며 멕시코, 캐나다, 호주, ASEAN 과의 FTA도 물망에 오른 상태다. 여기서 ASEAN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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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미 올해 안에 ASEAN과의 FTA를 체결한다는 입장이며, 그 경우 그야말로 "한국은 풍부한 노동력과 광대한 시장을 가진 아시아와, 첨단기술과 선진 경영 시스템을 갖춘 미국을 연결하는 동북아 FTA 허브의 자리도 넘볼 수 있게 될 것"이다(조선일보 1월 28일자 사설, "한·미 FTA 협상에 대통령 리더십 발휘해야"). 그리고 국내의 경제 연구소 등은 한미FTA의 보완책으로서 우리보다 기술 수준이 낮은 한-ASEAN FTA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
ASEAN은 값싼 노동력과 덜 진행된 자본주의화로 인해 초과착취가 가능하며 해당국의 정부도 경제개발을 위해 개방을 바라고 있는 눈치다. 이를 통해 미국은 이 지역을 자신의 이해에 맞는 지역으로 재편하려고 한다. 이렇게 될 경우 ASEAN의 황폐화는 말할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이 지역을 장악하여 중국을 포위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전선이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지게 된다. 3차 세계대전의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악의 축이었던 세 나라를 기억하는가. 그 중 이라크는 이미 미국의 정부가 들어섰다.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 존재여부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껍데기였다. 이란은 이미 미국으로부터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다. 이제 하나 남은 건 북한. 그런데 이상하게도 악의 축 중 하나였던 북한만 미국에게 ‘따뜻한’ 대우를 받고 있다. BDA해제, 2.13 합의, 2차 남북정상회담 등.
이는 얼마 전 등장한 CEPA라는 녀석에 착목해 볼 필요가 있다. Closer Economic Partner Arrangement. 일국 내 독립관세구역 FTA라고 쉽게 정의하겠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남북정상회담 발표 직전 내놓은 보고서에 이 개념이 담겨 있었는데, 골자는 남한이 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위협을 막아내고 떨어지는 이윤을 보전하기 위해 북한과 FTA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한 당국자는 이 보고서 발표 직후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으며 남북정상회담 때도 유력 재벌 총수들이 방북하였다.
남북간 FTA가 맺어질 경우, 북한은 남한의 하위생산기지로 편입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남한은 금융화로 인한 피해를 어느 정도 북한으로 이전할 수 있다. 북한 노동자를 초과착취함으로써. 한-ASEAN FTA와 상당히 비슷한 방법이다. 또한 미국은 북한에의 정치적 패배(2.13합의, BDA동결해제)를 초국적자본이라는 경제주체를 통해 만회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이런 유화책을 통해 중국, 러시아와의 대결구도를 당장 발현하지 않고 시간을 벌 수 있다. 이북을 자신의 영역으로 재편하여 한반도를 대결의 장으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한미 FTA, 그럼 이제 우린 뭘 해야 하나요.
한미 FTA는 돈 몇 푼 벌고 못 벌고의 문제로서 논의될 것이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제문제를 결정하는 건 정치적 파워게임이다. 한미 FTA는 한미동맹의 문제라고 외교당국자와 조중동이 인정한 것이다.
미국은 이미 헤게모니국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있다. 70년대 이후 장기침체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아시아를 거쳐 이젠 미국으로 그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내부적으로 나온 모순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를 미국은 정치적인 해법으로 풀어보려 하고 있다. 한미FTA는 미국의 이런 세계전략의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미FTA가 경제적으로 서민의 삶에 해악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들이 바탕으로 삼는 시장주의, 자유무역주의는 허상에 불과하다. 한미 FTA를 반대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FTA가 체결되고 나면 미국의 한국정세에 대한 규정력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민족공조도 산산조각날 수 밖에 없다. ISD로 경제주권도 뺏긴 나라, 미국식 천민자본주의의 첨병이 된 나라와 북한이 과연 협력을 하려고 할까.
현재 해야 할 일은 FTA를 무조건 막아내는 것이다. FTA와 비정규직보호법, 자본시장통합법, 금산분리완화, 지주회사 설립, 출자총액제 완화 등은 모두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자본이 천방지축으로 마구 뛰어놀 공간을 만들어 주고(자본시장통합법), 제멋대로 뛰다가 제 잘못으로 다치게 된 부분을 치료해주고(금산분리완화, 출자총액제 완화),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며(지주회사 설립), 자본의 놀이터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제거(비정규직보호법)하는 것이다. FTA는 이를 가능하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충격타이다.
두 번째는 민족공조의 강화이다. 일각에서는 2차 정상회담을 ‘남북자본회담’이니 ‘평화보다는 번영’이라며 깎아내리고 있는데, 이는 일면만 보고 내린 판단이다. 남북정상회담 성사는 한반도에 대한 강력한 미국의 규정력이 점차로 패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를 이뤄낸 건 이북의 정치적 승리 뿐만 아니라, 남한 민중의 반FTA물결, 평택으로 대표되는 반제 투쟁이다. 국회 비준이 미뤄지고 있는 것도 국회의원들이 반FTA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내용이 어떠하든간에 미국의 강력한 정치경제적 힘이 패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본분파들이 이북을 점령하려는 것을 정치적으로 차단하고 민중적인 경제개발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통해 외세의 전략과 이해가 개입되지 않는 강력한 민족국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 세계정세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민중민족적인 통일국가는 미국의 영향력이 배제될 수밖에 없고 이는 친미 보수주의, 친미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파워가 함께 소멸할 수밖에 없다.
이북에 기대어 미국을 패퇴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남측에 존재하는 자본분파, 정치세력은 남한 민중들이 그들의 이득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제거해야 한다. 현단계에서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언젠가는 남북간의 정면 대결이 불가피할 것이며 이는 다시 제 2의 한국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